AI가 쓴 보고서에 내 이름을 올려도 될까
· 이치화 · 2분 읽기

연휴 기간에 흥미로운 뉴스를 봤습니다.
미국 시카고대 통계학 교수 니컬러스 폴슨은 올해 9개월 동안 200편이 넘는 논문을 쓰거나 공동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AI를 활용했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논란이 커진 뒤 논문 플랫폼 SSRN은 관련 글 257건을 삭제하고 계정을 동결했습니다.
다만 257편이 연구부정으로 학술지에서 ‘철회’된 것은 아닙니다. SSRN은 동료심사 전 연구물도 올라오는 플랫폼이고, 보도에 따르면 AI 사용 미공개와 이례적인 대량 투고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다른 질문이 들었습니다.
AI로 논문을 쓴 것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AI를 썼다고 밝히지 않은 것이 문제일까요?
그렇다면 “AI를 사용했습니다”라고 밝히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국제기준(ICMJE)을 찾아보니 AI 사용을 공개하도록 하면서도 AI는 저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AI는 자신이 만든 내용의 정확성과 무결성에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임은 인간 저자에게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업무로 가져오면 더 복잡해집니다.
AI가 20쪽짜리 보고서의 80%를 작성했다고 해보겠습니다. 담당자는 근거와 숫자를 확인했고,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상사가 질문해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문장은 직접 고쳤지만 숫자의 출처도 모르고, AI가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둘 중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요.
여기서 흔히 말하는 Human-in-the-loop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AI가 판단하고 마지막에 사람이 승인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승인 버튼만 누른다면 정말 사람이 ‘루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학계에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Meaningful Human Control(의미 있는 인간 통제)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이 절차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AI의 결과를 이해하고 검증하며, 틀렸다면 거부하거나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AI의 판단을 무심코 따르는 Automation Bias, 실제 통제권은 부족한데 사고가 나면 인간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Moral Crumple Zone도 비슷한 문제를 다룹니다.
앞으로 “이 업무에 AI를 썼습니까?”보다 네 가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결과를 이해했는가.
직접 검증했는가.
틀렸다면 거부할 수 있는가.
내 이름을 걸고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사람이 마지막에 있다는 것과 사람이 판단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역할은 더 분명해져야 합니다.
직접 모든 것을 만드는 사람에서, AI가 만든 것을 검증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업무 역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