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의 초안에는 지우면 안 되는 시간이 있다
· 이치화 · 2분 읽기

완성된 보고서에는 지워버린 문장이 보이지 않는다. 비교 대상을 잘못 골랐다가 바꾼 흔적, 숫자가 맞지 않아 원자료를 다시 펼친 시간, 판단의 이유를 설명하다 말문이 막힌 순간도 남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일을 배우는 과정의 상당 부분이 그 지워진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I가 초안을 몇 초 만에 만들어주는 장면을 볼 때, 편리함과 함께 작은 걱정도 든다. 결과물은 얻었는데, 그 결과에 이르는 판단을 연습할 기회는 건너뛴 것이 아닐까.
이것을 신입의 성실성 문제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회사가 빨리 제출한 사람을 칭찬하면서 오래 고민한 사람에게는 왜 아직 안 됐느냐고 묻는다면 빠른 길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환경에서 혼자 배움까지 챙기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2026년 1월 앤트로픽 연구진이 공개한 실험이 마음에 걸렸다. 개발자 52명을 무작위로 나눠 낯선 프로그래밍 도구를 배우게 했는데, 과제 직후 이해도 시험의 평균은 AI 사용 집단 50%, 비사용 집단 67%였다. 작업 시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오류를 찾아 원인을 설명하는 문제에서 점수 차이가 가장 컸다.
짧은 코딩 실험 하나로 모든 직장인의 장기적인 성장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래도 ‘AI가 만들고 사람이 검토하면 된다’는 분업에서, 검토할 실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대한 답은 따로 필요하다.
선배는 이미 여러 번 틀려본 사람이다. 그래서 초안의 어색한 숫자나 빠진 조건에 눈이 갈 수 있다. 신입은 아직 그 경험을 쌓는 중이다. 두 사람에게 같은 도구를 주고 똑같이 결과만 확인하라고 해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자료를 베껴 쓰게 하거나 불필요한 고생을 되살릴 생각은 없다. 남겨야 할 것은 수작업이 아니라 판단의 연습이다.
AI가 고른 비교 대상 중 하나를 빼고 다른 하나를 넣은 이유.
제안된 결론을 그대로 쓰지 않은 이유. 그럴듯해 보였지만 원문을 읽고 버린 근거.
그런 흔적을 결과물과 함께 짧게 남기게 하면 좋겠다. 선배는 문장만 고쳐주기보다 그 선택의 이유를 듣고, 놓친 기준을 짚어주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같은 연구에서도 설명을 요청하고 개념을 확인하며 AI를 쓴 사람들은 이해도가 높은 편이었다. 사용 방식별 인과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AI와 함께 배우는 길까지 닫힌 것은 아니라는 단서다.
신입에게 필요한 것은 매번 혼자 답을 만들어내라는 주문이 아니다. 도움을 받아 만든 답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잠깐 더 머물러도 되는 여유다.
보고서 한 장을 빨리 받으려다 그 안의 판단 하나를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을 아끼지는 않았으면 한다.
[출처]
Shen·Tamkin, 「How AI Impacts Skill Formation」, 사전공개 논문(2026.1.).